
PNC Insight Publisher’s Column
HR의 종말, ‘사람(People)’의 시대
부서명에 담긴 패러다임의 진화
우리는 더 이상 ‘자원’을 관리하지 않는다. ‘문화’를 설계할 뿐이다.
“자원(Resource)은 소비되고 고갈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People)은 연결되고, 창조하며, 성장하는 존재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오래된 격언이 무색하게도, 기업에서 사람을 다루는 부서는 오랜 시간 ‘인적 자원(Human Resources)’이라는 건조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자원이란 목적 달성을 위해 효율적으로 투입하고, 마모되면 교체하는 부품과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산업화 시대, 컨베이어 벨트 앞의 노동력을 관리하던 테일러리즘(Taylorism)의 잔재다.
하지만 지식 근로자와 크리에이터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견고했던 이름표가 무너지고 있다. 국내외 선도 기업들은 HR이라는 간판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People(사람)’과 ‘Culture(문화)’라는 단어를 채워 넣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네이밍(Naming)의 유행이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조직의 근본적인 ‘철학과 관점의 대전환’이다.
글로벌과 국내의 트렌드: ‘피플앤컬처(People & Culture)’의 부상
조직의 통제와 관리에 집중하던 HR의 역할은 이제 구성원의 몰입과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전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 글로벌 사례: 에어비앤비(Airbnb)는 업계 최초로 CHRO(최고인사책임자)를 없애고 CEAO(Chief Employee Experience Officer, 최고직원경험책임자)라는 직책을 신설했다. 구글(Google)은 전통적인 인사부 대신 데이터 기반으로 직원의 행복을 연구하는 ‘People Operations’ 부서를 운영 중이다.
- 국내 사례: 토스(Toss),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당근마켓 등 혁신 IT 기업들은 일찍이 ‘인사팀’ 대신 ‘피플팀(People Team)’이나 ‘피플앤컬처(People & Culture) 그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조차 인사혁신처나 HR본부를 ‘조직문화실’ 또는 ‘People 본부’로 개편하는 추세다.
이들이 ‘People’이라는 단어 뒤에 굳이 ‘Culture(문화)’ 또는 ‘조직개발(OD, Organization Development)’을 결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탁월한 인재는 통제나 지시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숨 쉬는 토양, 즉 환경과 문화’를 가꾸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학술적 근거: 왜 ‘문화’와 ‘직원 경험(EX)’인가?
현대 인사조직 이론의 거장, 데이브 울리치(Dave Ulrich) 교수는 HR의 역할이 ‘행정 전문가’에서 ‘전략적 파트너’를 거쳐, 이제는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의 설계자’로 진화했다고 선언했다.
미래학자 제이콥 모건(Jacob Morgan)은 그의 저서 『직원 경험의 우위(The Employee Experience Advantage)』에서 직원 경험을 결정짓는 3가지 핵심 환경을 제시했다. 물리적 환경(공간), 기술적 환경(도구), 그리고 문화적 환경(조직문화)이다. 이 중에서도 구성원의 심리적 안전감과 소속감을 결정짓는 ‘문화’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다.
이익률 4배 증가
직원 경험(EX)과 문화 설계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경험 우위 기업’은 일반 기업 대비 평균 이익이 4배 높았다. (Jacob Morgan Research, 250개 글로벌 기업 분석)
이직률 59% 감소
강력하고 긍정적인 ‘조직 문화’를 보유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자발적 이직률이 59% 낮았다.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통제(Control)에서 지원(Support)으로
과거 HR의 핵심 지표는 근태 관리, 평가의 엄격성, 규정의 준수였다. 그러나 People & Culture 시대의 핵심 지표는 ‘직원 추천 지수(eNPS)’, ‘심리적 안전감’, ‘성장 체감도’로 바뀐다.
이 관점에서 구성원은 더 이상 회사의 부속품이 아니라 ‘내부 고객(Internal Customer)’이다. 회사가 고객의 여정(Customer Journey)을 분석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듯, 피플팀은 구성원이 입사하여 퇴사할 때까지 겪는 모든 여정(Employee Journey)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찾아내고 긍정적인 경험으로 재설계하는 ‘환경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독자를 위한 시사점 (Actionable Insights)
- 간판만 바꾸는 우를 범하지 마라: 명함에 ‘피플팀’이라고 적어놓고 여전히 근태 통제와 하향식 평가에만 몰두한다면, 냉소주의만 키울 뿐이다. 부서명 변경은 일하는 방식과 철학의 근본적인 교체가 동반될 때만 의미가 있다.
- ‘경험’을 데이터로 관리하라: 매년 형식적으로 하는 만족도 조사를 넘어, 온보딩, 직무 이동, 리더십 피드백 등 주요 접점(Touch-point)에서의 직원 경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체계를 마련하라.
- 리더가 곧 ‘문화’임을 인식하라: HR 부서 혼자서는 결코 문화를 바꿀 수 없다. 현장의 리더들 스스로가 구성원의 성장을 돕는 ‘경험 설계자’이자 ‘문화의 전달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리더십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맺으며: PNC인사이트가 걷고자 하는 길
자원은 쓰면 쓸수록 고갈되지만, 사람은 연결되고 지지받을수록 무한히 증폭한다. HR에서 People & Culture로의 진화는, 우리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상호의존성을 마침내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PNC인사이트는 단편적인 HR 제도를 다루는 것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건강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깊이 있는 ‘문화와 경험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해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