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NC Insight Publisher’s Column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사회:
왜 ‘사회적 자본’에 투자해야 하는가
속도와 경쟁이 빼앗아간 우정, 그리고 복리로 돌아올 관계의 힘에 대하여
“0과 1이라는 차가운 이진법의 디지털 사고가, 우리 삶에 존재하던 복잡하고 따뜻한 아날로그적 틈새를 무참히 획일화시켰다.”
지난 한 달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물리적 성장은 경이로울 정도다. 건물은 높아졌고, 도로는 빨라졌으며, 거리는 제법 깨끗해졌다. 물질적 풍요가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적 상태 역시 풍요로워졌을까?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조차 손에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글로벌 빅테크가 만들어 놓은 플랫폼 속에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과 자신을 실시간으로 비교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화려한 생활양식이 보편화될수록, 객관적 현실 인식은 사라지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 혹은 알량한 ‘우월감’만이 남는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휩쓸려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것, 이것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현대인의 보편적 정서가 되었다.
배움터의 비극: 교실에서 우정이 사라진 이유
이토록 타인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심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기저에는 ‘공교육의 변질’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 모더니즘 시대에 보편화된 학교는 본래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교양을 쌓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기능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실은 어떠한가. 오직 상급 학교 진학과 취업이라는 ‘결과 중심의 성과’에만 집착하며 치명적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학교의 목적이 ‘죽은 사람들의 딱딱한 개념적 지식을 암기하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던지는 화두
웹툰 원작의 시리즈 『참교육』의 묘사는 다소 과장되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관통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은 서늘할 만큼 뼈아프다. 서구의 결과 중심주의가 교실을 지배하면서, 아이들은 학창 시절부터 내 옆의 짝꿍을 마음을 나눌 ‘친구’가 아니라 짓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이자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 발달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겪은 이 승자독식의 뼈아픈 경험은, 평생을 지배하는 우월감 혹은 패배감이라는 치명적인 트라우마(기억)로 고착된다.
일터로 전이된 경쟁, 그리고 거대한 ‘사회적 비용’
문제는 이 뒤틀린 세계관이 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친구를 적으로 대하던 아이들은 자라나 일터의 구성원이 된다.
협력이 최고의 생존 전략인 기업 환경에 들어와서도, 이들은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 할 고과 경쟁자로 여긴다. 지식을 나누면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조직의 목표보다 개인의 생존을 우선시한다. 배움터에서 잉태된 부정적 인식과 감정의 기억이 일터와 삶터 전반의 파괴적인 태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을 지불하고 있다. 불신에서 비롯된 소통의 단절, 과도한 감시와 평가 시스템의 유지, 번아웃과 이직으로 인한 손실은 모두 동료를 ‘적’으로 규정하는 빈곤한 철학에서 비롯된다.
다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 투자하라
더 큰 사회적 파국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복원하는 투자다.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 호혜성, 동료애, 그리고 공동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곳을 넘어, 독립적 의사결정을 하되 타인과 공존하는 소양을 기르고 ‘평생 마음을 나눌 우정을 쌓는 곳’으로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일터 역시 개인의 성과를 쥐어짜는 콜로세움이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과 동료애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한다.
배움터
경쟁을 넘어선 ‘우정의 형성’. 타인의 다름을 포용하고 협력하는 공존의 감각 학습.
일터
적대적 평가의 폐지와 ‘동료애’의 회복.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심리적 안전감과 팀워크 구축.
삶터
디지털 고립에서 벗어난 ‘연대와 사랑’.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고 내면의 평화 추구.
리더와 HR을 위한 실천적 제언 (Actionable Insights)
- 상대평가의 폐해를 끊어내라: 내 옆의 동료가 실패해야 내가 좋은 등급을 받는 ‘제로섬(Zero-sum)’ 방식의 평가 제도는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절대평가와 팀 기반의 보상으로 동료를 적으로 만들지 마라.
- ‘관계’를 위한 잉여 시간을 허락하라: 모든 시간을 100% 과업(Task)으로 채우려 하지 마라.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잡담을 하고 유대감을 쌓는 시간은 결코 비효율이 아니다. 그것이 위기 때 조직을 구하는 강력한 신뢰의 자본이 된다.
-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잡아라: 속도만을 좇는 디지털 툴에 매몰되지 마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의 취약성을 보듬어주는 구체적인 ‘오프라인 경험’을 조직 문화 설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맺으며: 연대의 복리 효과를 믿으며
디지털이 만든 비교의 굴레와 결과 중심 사회가 강요한 서늘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배움터, 일터, 삶터 모든 곳에서 친구를 적으로 돌리는 관성을 끊어내고, 서로를 보듬는 긍정 경험과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당장 눈에 띄는 재무적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본이 만들어내는 신뢰와 연대의 ‘복리 효과(Compound Interest)’는 결국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공동체를 굳건히 지켜내는 기적이 될 것이다. PNC인사이트는 경쟁을 넘어 연대로 향하는 이 가치 있는 투자의 여정에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