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NC Insight Publisher’s Column
기억력의 시대는 끝났다:
리더의 무기가 되는 ‘고차적 사고’
복잡성과 모호성 속에서 ‘추상적 사유’가 만들어내는 지배력에 대하여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높이다. 현실의 복잡한 껍데기를 쳐내고 본질을 꿰뚫는 ‘추상화’의 능력이 곧 주도권과 지배력을 결정한다.”
– 철학자 최진석, ‘문명을 가른 추상의 비밀’ 강연 중
우리는 오랫동안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찬양해 왔다.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실적, 손에 잡히는 기술, 명확하게 암기할 수 있는 지식(Data)만이 가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과 인공지능(AI)의 폭발적 발전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구체적 지식과 절차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리더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정답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사고(Conceptual Thinking)’에 있다. 문명의 발전 과정이 곧 추상화의 과정이었듯, 개인과 조직의 성장 역시 구체적인 실무(Task)에 매몰되는 단계에서 벗어나, 모호하고 복잡한 세계의 맥락을 짚어내고 시사점을 도출하는 고차적 사고(High-order Thinking)의 단계로 진입해야만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당신을 승진시킨 능력이 당신을 실패하게 만든다
경영학자 로버트 카츠(Robert Katz)의 ‘효과적 관리자의 3가지 스킬’ 모델은 리더가 겪어야 할 시선의 이동을 명확히 보여준다. 조직의 하위 계층(사원~대리)에서는 주어진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업무 스킬(Technical Skill)’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조직 계층에 따른 요구 스킬의 변화 (Katz Model)
업무 스킬 중심
휴먼 스킬 확장
개념적 스킬 중심
“임원과 팀장 계층으로 올라갈수록 승진의 기반이 되어준 업무 능력(Technical)보다, 사람을 다루는 역할(Human)과 거시적 흐름을 읽는 개념적 스킬(Conceptual)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된다.”
불행히도 많은 초보 리더들은 과거 자신이 실무자로서 성공했던 공식, 즉 ‘개개의 구체적인 내용을 완벽히 암기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이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라는 비극을 낳는다. 리더의 자리는 현미경으로 개별 픽셀을 들여다보는 자리가 아니다. 멀리 물러서서 모자이크 전체의 패턴을 읽어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변수들을 연결하여 조직의 방향을 설정하는 고차원의 ‘개념적 사고’를 발휘해야 하는 자리다.
기억력에서 상상력으로: 블룸(Bloom)의 인지적 진화
이러한 사고의 진화는 교육학자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의 ‘인지적 영역의 분류 체계’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인재상은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인 ‘기억하기(Remember)’와 ‘이해하기(Understand)’에 머물렀다. 객관적인 정답이 존재했고, 이를 오류 없이 적용하는 능력이 최고의 가치였다.
높은 수준 (미래/상상력)
VUCA(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 환경. 정답이 없는(無) 주관주의의 세계. 흩어진 데이터를 철학적으로 엮어내어 새로운 대안을 창조하는 리더의 영역.
낮은 수준 (과거/기억력)
규칙이 명확하고 정답이 있는(有) 객관주의의 세계. 오늘날 이 영역은 AI와 자동화 알고리즘에 의해 완벽하게 정복되었다.
AI가 ‘기억하고 이해하고 응용하는’ 속도를 인간은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이제 인간 고유의 가치, 특히 리더의 가치는 피라미드의 상단인 ‘분석하고, 평가하며, 창조하는’ 고차적 사유에서 나온다. 모호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기준을 세워 평가하고, 기존에 없던 철학적 의미(시사점)를 길어 올리는 것은 오직 ‘추상할 수 있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추상적 전략을 구체적인 결과로 빚어내는 힘
‘추상적 사고’라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라 비판하는 실용주의자들이 있다. 하지만 조직의 거대한 방향타는 언제나 가장 높은 수준의 추상성에서 시작된다.
가장 추상적인 (Forever)
미션 & 비전
존재 목적, 이상적 미래
가장 구체적인 (Today)
업무 활동 (Tasks)
일상의 과업, 실무 실행
기업의 존재 이유인 ‘미션(Mission)’이나 미래 목표인 ‘비전(Vision)’은 그 자체로 고도로 추상적인 개념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바로 이 ‘추상적인 영감’을 피라미드 하단으로 끌어내려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행동과 결과’로 번역해 내는 것이다. 리더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왜(Why)’라는 거대한 질문의 답을 내놓지 못하면, 조직의 구체적인 ‘업무 활동(What/How)’은 맹목적인 다람쥐 쳇바퀴 돌기로 전락하고 만다.
리더를 위한 실천적 시사점 (Actionable Insights)
- 암기력을 자랑하는 리더에서 벗어나라: 실무자가 보고한 데이터의 소수점 단위를 기억하고 지적하는 것은 리더의 능력이 아니다. “이 데이터들이 모여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시사점은 무엇인가?”를 묻는 훈련을 시작하라.
- 정답이 없는 문제(Wicked Problems)를 두려워 마라: 과거처럼 벤치마킹할 ‘정답’이 존재하는 세상은 끝났다. 블룸의 최고 단계인 ‘창조하기’ 영역에서는, 모호함 속에서 스스로 철학적 기준을 세우고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시간의 20%를 ‘사유(Thinking)’에 할당하라: 바쁘게 메일을 처리하고 미팅을 뛰는 것은 ‘업무 활동(Task)’이지 ‘전략(Strategy)’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확보하여, 현상을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하고 본질을 꿰뚫는 추상화 훈련을 일상화하라.
맺으며: 철학하는 리더만이 살아남는다
기억의 시대가 저물고, 사유와 상상의 시대가 밝았다.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에만 집착하는 자는 결코 다가올 파도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 가장 높은 곳에서 전체의 지형을 조망하는 추상적 사유. 그것이 바로 DT 시대, 변동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리더들이 쥐어야 할 최후의 나침반이다. PNC인사이트는 단편적인 스킬 교육을 넘어, 리더들의 시선을 끌어올리고 깊은 철학적 통찰을 돕는 ‘고차적 사고’의 파트너로 함께할 것이다.


